『속 깊은 이성친구』- 장 자끄 상뻬
책을 사 모으는 걸 좋아해서
한 때는 친구들한테 원하는 책들을 미리 언질해서 선물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장 자끄 상뻬에 푹 빠졌던 적이 있었다.
아빠께는 상뻬의 커다란 크기의 책을 세 권이나 선물 받았고
친구들한테도 여러 권을 받았다.
그 중에서 『속 깊은 이성친구』가 네이버 오늘의 책에 소개되었던 것이 떠올라서
이 새벽에 다시 한번 가볍게 읽었다.
예전에 맘에 드는 부분을 체크해두었던 표시가 있어서 살펴 보았는데
지금 읽으니까 그때 왜 그 부분이 좋았는 지가 잘 이해가 안간다.
지금 맘에 드는 부분을 새로 체크해서 책장에 꽂는다.
* 푹신푹신한 안락의자, 내가 피우는 네덜란드 산 파이프 담배 냄새, 근시안인 내 눈이 발산하는 특유의 부드러움, 나의 비만, 심지어는 이제 막 벗겨지기 시작하던 내 머리까지도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어떤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렌느는 그런 편안한 느낌에 고무되어 내가 이끄는 대로 속내 이야기를 순순히 털어놓더니 나중에는 자기가 저지른 일들을 자백하기에 이르렀다. 대화의 분위기는, 오래 전부터, 아주 아주 오래 전부터, 어쩌면 너무 오래 전부터 약한 불 위에 올려 놓은 어떤 음식이 설핏한 저녁 햇살 속에서 천천히 익어 가고 있는 시골 부엌의 분위기 만큼이나 아늑했다.
* 그녀에게서 전화를 받고 나면, 나는 밖으로 달려나가 내 사랑을 찬미하고 내 사랑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곤 한다.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라도 몇 곡 목이 터져라 불러 보고 싶다. 하지만 천성이 소심한데다 목소리도 변변찮은 나로서는 그저 휘파람을 부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내가 밖으로 나서면 내 개가 따라 나오고, 우리는 시골로 나간다. 내 개가 불한당처럼 이곳저곳 뒤지고 다니는 서슬에, 집토끼, 산토끼, 자고새들이 달아난다. 얼마 안 있으면 금렵이 풀리고 사냥철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유쾌한 시간을 보내고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어렴풋한 불안이 문득 고개를 쳐든다. 전화 한 통 받고도 이렇게 난리를 치는데, 나중엔 그녀 때문에 내 삶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건 아닐까?
* 응답 메시지를 더욱 상냥하고, 더욱 쾌활하고, 심지어는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게 고쳐서 내 자동 응답 전화기에 새로이 녹음해 두었건만, 그녀에게서는 더 이상 아무런 소식이 없다.
* 너는 기분이 좋으면 멍멍하고 짖는다. 화가 났을 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짖지. 너는 감정의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는 데 많은 한계가 있어. 네가 표현할 수 있는 뉘앙스는 별로 많지 않아. 하지만 나는 너와 달라. 기분이 좋을 때, 나는 그 좋은 기분의 미묘한 차이를 여러 가지로 표현할 수 있어. 싱긋거리거나 껄껄거릴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엉엉 울 수도 있어. 화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야. 나는 허허 웃는 것까지 포함해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있어. 그 이치는 아주 복잡하고 대단히 혼란스러워.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너는 착한 개야. 그리고 내가 개를 좋아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지. 그런데도, 나는 이따금 네가 고양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