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섭의 교회건축 좌담 >
- 김영섭 & 김억중 & 김정신
일시 : 1998년 6월 26일 금요일 저녁 8시 30분 ~ 9시 40분
장소 : 김영섭 소장 자택
좌담에 들어가기 전에 <발안 성당>, <안양 중앙성당>, <잠원동 성당>, <정릉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성당> 답사가 있었다.
김억중 : 소장님께서 교회건축 설계작업을 '피하고 싶은 쓴 잔'이라고 표현하셨는데, 피하고 싶은 쓴 잔임에도 불구하고, 쓴 잔을 많이 마신 건축가이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마실 땐 썼는지 모르지만, 마시고나면 또 드시고 싶은 잔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특별히 교회건축 설계작업에 대한 매력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고, 또 그 특징같은 것들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김영섭 : 교회건축이 건축가들에게 특별한 매력으로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가 아마 조형의지를 마음대로 구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는 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르 코르뷔제의 <롱샹성당>처럼 교회건축은 조형성이 뛰어난 디자인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 때문에서 기인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현실은 오히려 그러한 속성 때문에 엄청나게 쓴 잔이 되고맙니다. 왜냐 하면 소위 공사비용 문제만 보더라도 다세대주택을 짓거나 근린생활시설이나 교회건축을 짓거나 모두 평당 300만원이란 개념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게다가 조형의지를 구현할 수 있으리라는 건축가의 희망 자체가 현실과 근본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 어떻게 하면 공간을 충족시켜주고,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면들에 진실된 재료를 쓰고, 경제적으로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느냐 하는 이 세 가지 포인트로 그 문제를 풀어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건축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매번 똑같이 반복되는 설득과 그에 따른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하다보니까 이제는 자꾸 설계를 시작하기 전부터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똑같은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사목위원내지는 사제들과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점점 일에서 피하고 싶어집니다.
어떤 교구의 일들은, 교구에서 직접 발주하는 일 이외는 안하게 되는 가장 큰 동기 중의 하나가 지역신부님들이나 사목위원들이 막무가내로 교회의 일도 설계용역업으로 간주하고, 설계일을 하나 주는 거 아니냐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그것은 정성을 다해서 지어야 하는 하느님의 집, 또는 하느님 백성의 집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하느님 사업의 일환이라는 개념과 굉장히 멀어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에 비해서 어떤 교구의 신부님들은 순수하고, 돈없는 건 다 똑같은 입장인데, 정신과 자세가 훨씬 맑은 것 같아요. 가끔 지방교회를 두루 돌아다니다 보면 쓴 잔이 단맛으로 변하는 그런 기쁨을 직접 경험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은 제 사무소 형편이 다른 쪽에서 경제적인 부가 축적이 되고, 다른 프로젝트들을 손실없이 만드는 방법론이 생기면서, 교회 설계작업은 먹고사는 문제와 떠나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집착하지 않고, 즐겁게 임하려고 하는 자세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문제를 떠나 우리나라에 교회 프로젝트 자체가 많이 시행되고 있다는 데서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건축이 대공간 설계가 되는 점을 들 수 있는데, 대공간을 다룰 수 있는 체육관이나 강당같은 장스팬 설계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봅니다. 우리 스스로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하면 그 장소에 절대적인 어떤 분이 계시다라고 믿겨지게끔 그러한 공간을 만들 수 있느냐. 그것이 매번 교회 프로젝트를 대할 때마다 무겁게 다가오는 문제의식입니다.
김억중 : 특별히 이 시대에 교회건축 공간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해석이 요한다든지, 혹은 어떤 새로운 프로그램이 부가되어야 한다든지 하는 문제점들을 설계하면서 많이 느끼실 텐데, 그런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을 들 수 있습니까?
김영섭 : 전에는 주로 전례 중심의 공간을 제일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저 자신이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그러기도 했죠. 이제는 교회 밖에서 보는 교회, 또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도시에서의 장소와 위치의 문제, 예를 들면 <금산성당>의 경우 교회건물이 막다른 길에 놓여 있을 때 시선을 막아주는 것보다 길 위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의 시선을 빠져나가게 한다든지 하는, 형태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도시적인 맥락같은 것들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과거의 교회건축이 전례적인 공간과 기능, 수용인원 등이 우선하는 전제가 되었다면 지금은 도시 환경에 대한 문제, - 물론 전에도 생각 안한 건 아니지만, 그 당시 그것은 일단 부차적인 문제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 다음에 과연 이 성당이 소위 컨템포러리(Contemporary)한 것이지만, 다음 세대에도 이 건물이 우리 후손들이 사용하는 전례공간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하는 시간에 대한 물음, 이것이 요즘들어서 많이 생각에 잠기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김억중 : 시대성에 대한 언급에서 우리 전통건축과 교회건축을 대비하면서 우리 나름대로 토착화된 교회건축의 어떤 전형을 마련하시려는 의도가 있으신 줄 알고 있는데요.
김영섭 : 과거에는 선생님도 마찬가지지만, 서구일변도의 교육 탓인지, 한국적인 것이 총체적으로 비하되는 과정을 겪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 사람은 엽전이다, 전통 건축은 납작지붕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되었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저돌적 근대화가 가져다 준 건축과 도시의 문제해결에 대한 모든 것들이 전통구현만으로는 풀리지 않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반대로 서구건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서구건축이 잘못이식되어 온 일종의, 강요된 모더니즘이라고 하면 그 모더니즘 때문에 우리의 혼재된 도시적 상황이 유발되고 전국 어디나, 도시의 특성이 없어져버린 현상, 즉 이러한 혼돈의 씨앗이 여기저기 뿌려지고 모더니즘이라는 이름을 빙자해서 자행된 소위 부동산에 대한 경제개념만 있고 문화가 없는 근대화를 가져왔는데 이 강요당한 근대화의 폐해를 치유하는 것이 과연 무엇으로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저는 그러한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우리 고전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시도를 하자는 것인데 우리 고전에는 이 시대를 초월해서 우리들에게 전해주는 어떤 모더니티가 있습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전통 속에 있는 모더니티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으로서 제 자신이 리저널리스트, 즉 지역성의 아이덴티디를 갖는 한국의 건축가라고 정의한다면 이걸 가지고 세계라는 무대에도 나갈 수 있고, 또 시간성의 제한을 넘어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전통에 대한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사람들이 흔히 할 수 있는 질문, 전통공간의 구법이라든지, 또는 공간의 여러 가지 구성방법론, 이런 것들보다는 일단 쉬운 것부터, 예를 들면 텍스츄어라든지 이런 것들을 은유적으로 소프트하게 인용하되 일단 그러한 것들이 우리 고유의 모더니티로 읽혀지는 것이라면 건축의 메타포를 통하여 읽힐 수 있는 방법론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의 문장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단어들을 세련되게 다듬고, 다시 제대로 된 단어를 선정해 하나의 좋은 문장을 쓸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어휘찾기부터 먼저 해야 되지 않겠는가. 당대에는 완성이 이루어질 것 같진 않지만, 우리 세대부터 우선 시작해보아야 된다는 거죠. 우선 먼저 손쉽게 할 수 있는 건 돌담이라든지 몇 가지 '마당'에 대한 구상, 즉 대웅전의 마당이라든지 요사체의 마당을 교회건축 계획시 성당마당과 수녀원 마당들에 이런 것들을 도입해 보는 것이죠. 제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 것에 대한 것을 늦배운 셈이죠.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능력 만큼만 조금씩 해나가려 하는 것입니다.
김억중 : 혹시 그런 전통적인 요소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다른 요소들과 형태구성상의 어떤 충돌이 있다든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섭 : 가령 '지붕있는 건축을 만들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이것은 저 자신한테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다가옵니다. 아마 최근에 하고 있는 작품들을 보면 지붕개념이 어찌 됐건 어디엔가 있습니다. 지붕의 모양이 어떤가를 떠나서, 지붕의 개념은 우주와의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는 거창하기 까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서양이 가지고 있는 미학, 실체와 공허부의 콘트라스트(Contrast)개념 뿐만 아니라 외부도 아니고, 내부도 아닌 중성의 공간의 도입이라든지 이런 것,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겠지만, 지붕이 우리 건축에서 분명 뭔가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느끼는 생각에 앞서 이상하게 지붕이 있어야 될 것 같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작업에 앞서 작용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직관같은 것일까요? 그래서 디자인할 때마다 지붕이 있는 성당, 지붕 모양에 대한 다양한 시도가 지금까지 계속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 끄는 접시모양, 별모양도 있고, 기타 여러 가지 있습니다.
하여튼 지붕 처마에 대한 생각들을 비롯해서 지붕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고 있습니다. 한편 전통 한국건축에 있어서 그렇게 큰 스케일의 지붕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만들고 있는 그런 큰 지붕들이 앞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될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어쨌든 저는 전통건축에서 보았던 지붕에 대한 의미를 꾸준히 탐구할 겁니다. 그에 대한 정리는 나중에 선생님들이 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김억중 : <발안성당>의 경우 제대 오른쪽편이 한식담장으로 되어 있는 걸로 압니다. 제가 느끼는 것은 그 자체가 워낙 이미지가 강해서 그 상징적 의미가 직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혹시 제대쪽으로 집중하고자 하는 어떤 공간의 지향성을 해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형태요소 처리를 어떻게 하십니까?
김영섭 : <삼성산성당>을 가보셨으면 그 부분을 상당히 재미있게 보셨을 텐데. 왜냐 하면 한식담장이 외부 담장에서부터 지하층으로, 그리고 성당벽을 내려가서 제대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건축도 의상디자이너처럼 자신의 아이덴티티나 어떤 특정한 시기를 규정짓는 원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몇 번의 설명회에서도 밝힌 바 있는데, 연남동 주택이나 서대신동 주택 그리고 대나무 집에 쓰인 가로 줄무늬가 없는 하얀 벽돌면은 '수원성'의 외벽에서 차용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전통 목조가구식 건물을 보면 회벽 전면이 5mm 들어가 있고, 프래임 구성면인 나무구조는 튀어나와 있는데, 그것을 컨버트(Convert)시켜서 콘크리트구조 프래임이 5mm 들어가게 하고, 흰벽돌면은 조금 나오게 해서 앞서 말한 작품들의 원단으로 썼죠. 이처럼 여러 다른 주택 작품에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성환성당>에서도 그 원단을 썼습니다. 이 다음에 어느 정도의 텀을 두고 쓰고 싶은 또 다른 원단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옥담장에서 본 원단, 그 원단이 쓰여지는 건물도 앞으로 몇 개 더 만들고 싶습니다.
안도 타다오가 즐겨쓰는 노출콘크리트를 살펴보면 루이스 칸도 쓰고, 르 코르뷔제도 썼지만, 코팅합판, 페인팅한 정제된 합판을 가지고 보다 더 정갈한 노출면을 만들므로써 일본의 정서를 표현하는 콘크리트면을 만들므로써 안도의 원단이 됐다고 보거든요. 그 사람이 만들고 있는 표면은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어떤 건축가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라고 보는 것이죠.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특별한 공간이며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특징지우는 공간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그 원단이라면, 그 원단에 떨어지는 빛과 어두움, 그런 여러 가지 건축어휘의 조합이 작품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라 보죠.
<발안성당>의 경우 맨처음에 계획한 것은 조금은 인공적이고, 규격이 좀 맞지 않는 콘크리트 블록의 단면을 깬 스플릿 블록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임신부님이 <삼성산성당>을 보고 '돌로 바꾸자'고 제안하셔서 곧 그렇게 바뀔 예정입니다. 돌담면이 두드러지지 않게 노출콘크리트와 더불어 그냥 하나의 배경으로 묻혀지면서, '아, 저것도 하나의 원단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지금 김종규씨와 같이 계획하고 있는 <남양성지>는 거의 한국 돌담 원단으로만 만들까 합니다. 모든 건물이 벽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돌담으로 전부 다 만들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삼청동주택>의 담장같은 걸로, 예를 들어 기와는 얹지 않고, 줄눈면만 튀어나오게, 아니면 노출콘크리트로 담장 문양을 다시 만들던지 해서 요즘의 모던한 재료와 그럭저럭 잘 어울리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실험적인 생각을 계속 하죠. 지금 제 작품들이 매년 두 작품씩 호주에서 발간되는 세계건축년감에 94년부터 초대를 받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제 작품을 표현할 때 '한국적'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바로 '동양적인 모더니즘' 이란 얘기를 합니다. 그 사람들도 깊이 본 건 아니겠죠. 제 작품들을 직접 와서 본 것도 아니고. 서구에서 하는 모더니즘과 다른 방식으로 여러가지 시도를 하는 것을 결국 그런 맥락에서보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김정신 : 김 소장님과는 '성당'에 관한 대담만 두 번 했기 때문에 익히 많은 대화를 나눈 걸로 압니다. 지난 79년 처음 뵌 이후 서로 안 지도 아마 20년 된 셈이죠. 제가 알기로는, 80년대는 형님과 작품활동하면서 <방배동 성당>, <논현동 성당> 등 적벽돌의 상당히 절충적인, 그렇지만 서울교구의 대형성당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인 문제점을 해결한 작품들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러다가 한동안 성당건축은 뜸했던 것 같고. 의도적으로 성당건축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겠죠.
80년대 작업하신 것과 90년대 중반 이후를 비롯해 오늘 답사한 성당과는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면서 우리 성당건축의 사(史)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오히려 60~70년대 모더니즘쪽으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바티칸 공의회 이후 상당히 이념적인 건축을 한국 건축가들이 시도했었는데, 그것이 이념과 실제 내부의 전례형태가 잘 안맞아서 결국은 실패한 경우가 많았는데, 김 소장님한테서는 적어도 성당의 전례 기능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어떤 미숙함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자신감을 갖고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점이 상당히 유리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경험도 그렇지만, 신앙, 교회음악 및 미술에 대한 깊은 조예 등 여러 가지 복합적인 플러스 요인도 적잖게 작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에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정말 진정한 근대 성당건축은 이제부터 시작하지 않느냐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 김 소장님 작품은 도면보다는 직접 가보는 것이 훨씬 좋아요. 도면상으로 봤을 때는 계단도 과도하게 많고, 뭔가 복잡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그런 점이 많이 해소되거든요. 그것은 제가 볼 때는 디테일의 처리라든지 재료 사용에 있어서 소장님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당건축만 총 스물 네 작품을 하셨다는 데 대해 신자로서 뿐 아니라 건축가로서 크나큰 축복이죠. 부러움과 함께 김 소장님 작품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걸며,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과잉 디자인한 부분이 들어있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사이트에서 출발하기보다 지붕의 형태, 컨셉을 가지고 사이트를 이끌어가려고 하는 그런 점이, 특히 시골성당에서 보입니다.
김영섭 : 김정신 교수님과는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에서 베스트 파트너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지속적으로 제 작품을 지켜 보아주셨고, 그것을 토대로 일련의 과정을 추정해주신 거라 아마 누구보다도 잘 보셨을 것 같습니다. 80년대는 제가 형(김중섭 소장)을 모시고, 교회건축을 했습니다. 김중섭씨의 어시스트 디자이너였다고 봐야죠. 제가 형님과 독립한 것이 88년도부터니까 지금 이제 만 10년이 됐습니다. 그 당시의 교회건축은 형님이 일의 수주를 해 왔기 때문에 결국 그분 일이였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그런 이유에서 독립하고나서 한 5년의 공백기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이 형님은 서울교구의 <번동성당>이라든지 <부산교구의 송도교회와 안락동성당>을 계속 설계하였습니다. 주로 벽돌면의 매시브한 건물들은 김중섭 씨가 가지고 있던 80년대를 풍미했었던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같은 것이였었죠. 저는 거기에 맞춰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하는 걸로 제 역할을 분담했었다고 봅니다. 그 당시 설계된 대부분의 교회건물 외관 디자인은 가형(家兄)인 김중섭 씨의 작품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제가 독립하고나서는 제 자신의 디자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님은 접근하는 방법도 매스에서부터 접근하였고, 저는 내부공간에 대한 구성이 바깥으로 펼쳐지는 식으로 서로 성향이 달랐죠.
성당은 어떤 의미에서 중세시대부터 그 지역에서 하나의 랜드마크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도시에 있어서의 상징체계는 (옛날이 교회였다면) 지금은 오피스빌딩이 도시의 상징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교회건물이 상대적으로도 작아지는 규모에도 불구하고 성당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중심성에 대한 위치 회복은 계속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봅니다. 그 방법론의 하나로 지붕을 택하게 됐는데, 예를 들면 <발안성당>같은 경우가 그 중의 하나입니다. 지역 도시에서 십 리나 떨어진 먼 곳에서부터 그 성당이 보일 것이라는 경관에 대한 마인드도 중요하지만, 근접해 있는 아파트주민들이 성당을 내려다본다는 생각도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15층 되는 고층아파트에서 내려다 보는 성당 지붕모양은 참 아름답습니다. 그 위에서 보면 제가 청주박물관에서 보았던 즐목문 문양의 골이 돌아가면서 회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사이트에 대한 생각들과 사이트와는 별도로 전례공간의 중심성 회복이라는 것, 이 두 가지가 결부되어 제 작품에 집요하게 표현되고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 중심성의 회복이라는 명제와 함께하는 지붕이라는 생각도 중요한데,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구체적인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붕이 우리 한국인의 마음에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는 거죠. 외부공간에서의 빛의 유입이라든지 자연적인 환기를 위해서 지붕이 벽체와 분리돼서 떠있는 것이 좋다는 그런 생각들도 분석적으로 자꾸 하염없이 생각에 몰두하다 보면 결국 지붕의 중요성이 나의 작품에 있어서 어떤 개념을 지배하고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정신 : 부천에 있는 달걀성당, <심곡 부활성당>같은 경우는 지붕이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발안성당>같은 경우는 트러스 구조의 접시 모양으로, 빛이 아주 부드럽게 쏟아져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벽과 띄어놓은 그 부분이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의도와 맞아 떨어지는지. 그러나 코너부분의 구조체(기능) 때문에 깊숙한 처마의 멋은 내부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모서리에 포스트가 불쑥 올라가고, 유리로 처리됐는지 반사되어 왜곡되기조차 합니다.
김영섭 : 그것은 아직 처리를 안한 것입니다. 앞으로 거울면에 샌드 블라스팅을 할 겁니다. 즉 콘크리트로 막는 것보다 모서리 부분이 틔이게 보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현재 거울면이 반사되어 왜곡돼 보이니까 그 유리면을 샌드 블라스팅하려는 것이죠. 돈이 많이 들면 그냥 필름을 붙일까도 생각 중입니다. 다시 말하면 에지(Edag)부분을 아주 거대한 기둥으로 막는 것보다는 그 부분이 흐릿하게 지나가 버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막 시공한 상태라 거울부분 때문에 연결되어 보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사되어서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이죠.
김정신 : 그래서 빛이 들어오는 부분이 좀 얇았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또 최근 작품에서 느끼는 것은 접지성이라고 할까요. 물론 성당이 반드시 1층에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2층 이상에 두더라도 그 앞에 데크를 둠으로써 지면과의 연결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앞서 중심성을 말씀하셨는데, 도시성당으로서의 해법으로 한 번 나타내 본 것이 아니겠는가. 다시 말하면 시골 성당은 대부분 성당이 1층에 위치해 있으니까 바로 들어가죠. 그런데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중층으로 상당히 부담스러운 데 반해 지방에 위치한 성당은 대체적으로 2층에 있으면서도 진입이 아주 자연스럽다는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중앙성당>같은 경우는 큰 스케일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온화하고, 친밀하기보다는 상당히 딱딱한 느낌입니다. <발안 성당>도 아직 완성이 안됐지만, 굉장히 하드(Hard)하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원래 의도는 지붕의 빛을 상당히 부드럽게 하려고 하신 것 같은데, 어떤 이유인지, 혹시 아직 완성이 안돼서 오는 느낌인지 모르겠어요.
김영섭 : 신학대학의 사제학교에서 신부님들에게 제가 고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전례중심의 교회공간으로의 회귀'와 '땅과 밀착된 전례공간'입니다. 전례공간은 교회건축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바티칸 공의회 헌장들이 확대 해석되면서 전례공간보다 주변 부속공간이 훨씬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의 방이라든지 기타 부속실들이 1층 공간을 다 차지하고, 성당은 일주일에 한 번만 쓰니까 제일 위로 올라가도 되지 않느냐는 그런 일종의 철두철미한 실용주의로 흘러가버린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교회가 일반 대중으로 부터 점점 유리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즉 성당이라는 것은 다른 부속공간이 좀 불편하게 된다 하더라도 1층에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갖지요. 그것 때문에 가급적이면 저는 성당 공간을 지면에 밀착시키려고 하고, 1층이 안되면 적어도 대지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서 <초당성당>같은 경우도 지면과 7m 레벨업(Level Up)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광장이 기단부로 조성되고 그 다음 한 층을 램프로 올라가서 후면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의 맥락입니다. 그러다 보면 부속공간이 지하에 위치하게 되거나, 성당 위에 올라갈 수도 있죠. 지하공간이 전에 설계한 성당보다 훨씬 많은 면적을 차지하게 되는 그런 최근의 경향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발안성당이 좀 딱딱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골조 문제 때문인데, 저는 딱딱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성당이 큰 무주공간이 되면서 부닥치는 스트럭쳐(Structure) 자체를 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무주공간 보다는 기둥이 대공간에 섞여 있는 공간의 변화가 있으면 좋을 텐데, 이 점에 대해서는 성당측에서 대경실색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그것을 피하다보니 대체적으로 보와 스팬이 엄청나게 커집니다. 그러면 그런 보를 이용해서, 또는 보를 감추기 위해서 워플슬래브로 계획한다든지 하는 다른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발안성당>같은 경우를 보면 스팬이 엄청나게 긴 데다가 기둥없이 모든 2층구조와 지붕이 다 매달려 있게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스트럭쳐가 강조됨으로 딱딱한 느낌을 주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 스트럭쳐를 감쇄시키기 위해 빛에 대한 문제와 부가되는 벽면의 재료, 바닥의 재료들을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것으로 선택함으로써 딱딱한 부분을 상쇄시키고, 조명 가구 등의 장치물을 이용해서 또 다른 느낌으로 바꿔지기를 바라죠. 그런데 아직 완성이 안되어서 자신있게 단언할 수는 없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실제로 사람들이 성당에 들어차고 미사성제가 거행되면서부터는 그러한 거대 스트럭쳐같은 부분들은 잘 눈에 뜨이지 않을 것입니다. 즉, 사람들의 시선집중을 어느 쪽으로 두게 만드느냐 그것이 훨씬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발안성당>같은 경우도 뒷부분을 지금 미리 정다듬을 해놓으면 더러워지니까 그건 준공 싯점에 깎아버릴 생각이거든요. 그러면 빛의 산란효과를 낳기 때문에 다른 부분은 조금 어둡게 되면서 스트럭쳐의 딱딱한 분위기가 감소될 것입니다. 결국제대 부분이 제일 밝게 되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빛이 있을 땐 굉장히 제대벽이 밝습니다. 특히 <중앙 성당>같은 경우에는 빛이 대량으로 들어오니까 사람들이 거대 스트럭쳐가 있는, 위 쪽을 보지 못하거든요. 제대와 옆에서 떨어지는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빛에 대한 분위기만 계속 보게 되기 때문이지요. 선생님이 지적하신 그 부분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한 끊임없는 대비책들을 계속 생각해 내야 한다고 보는 것이죠.
김억중 : 소장님께서는 지역이든 도시에 지어지는 성당이든 장소로서의 중심성을 말씀하신 것 같은데, 설계안마다 중심형 평면을 지향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한 중심성은 제대쪽으로의 방향성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아요. 앞서 빛을 말씀하셨는데, 제대 부분에 빛이 유입되는 형식과 크기, 위치, 모양들이 굉장히 다양하고 풍부하게, <발안성당>도 그렇고, <중앙성당>도 그런 것 같은데요. 중심성과 방향성이 충돌되는 과정에서 빛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보는 거지요. 또한 그것들 간의 위계를 조정하는 일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지금 현재로써는 절제가 덜 되어 있어서 산만한 느낌을 받거든요.
김영섭 : 특히 <잠원동 성당>의 예를 보면, 물론 측면으로 들어오는 빛도 있지요. 그리고 천창에서 들어오는 빛도 있고. 날씨가 맑을 땐 어느순간 아주 극적으로도 보이는데, 사람들이 제대쪽을 보게끔 빛의 위계가 설정되어 있거든요. 성당을 새로 고치고나서 제대에 대해 사람들이 집중력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빛에 대한 위계가 제대쪽이 가장 밝되, 전체적으로 성당 내부가 밝게. 그러나 제단쪽이 밝다 하더라도 결국은 미사성제의 봉행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성찬의 전례를 공동으로 함께 참여하는 일종의 두레상의 개념이 보다 확실해지는 쪽으로 항상 빛을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부분은 아직 미완성된 것이어서 그림으로 보자면 아직 바탕단계이고, 거기에 하나하나씩 부가된 장치들이, 이를 테면 스테인드 글라스가 들어갔는데 어느 쪽은 조금 막는다든지 해서 빛의 위계들이 성립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봅니다. <정릉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원>같은 경우는 빛의 위계가 없이 전체적으로 조금 어둠에 휩싸인 성당이 되어버렸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조금 손을대어 천창을 통해 빛이 제대까지 떨어질 수 있으면 그 성당은 굉장히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항상 빛에 대한 감각, 상상력이 성당이 완성될 때까지 무궁무진하게 자신을 발동시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건축가는 마치 치밀한 마술사처럼 빛을 조절하는 역량이 있어야 된다고 보지요. 제 자신도 그것 때문에 매일 고민하고, 그리고 비록 인공적인 조명이지만, 완전히 낮의 조건이 컨버트(Convert)된 밤에도 빛의 위계가 한낮의 분위기와 같은 연출을 하기 위해서 조명기구 선정, 룩스에 대한 컨트롤 등을 매우 꼼꼼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며칠 전 <발안 성당> 등기구를 달기 전에도 제가 선정한 여러 등기구를 저희 사무실에서 HQD, 할로겐, 메탈 할라이트 등으로 교체하여 직접 끼워보았습니다. 조도 뿐만 아니라 그 빛이 차가우냐, 조금 따뜻하냐 그런 느낌들도 전부 체크해서 최종적으로 조명기구와 램프의 빛을 정하거든요. 그렇게 함으로써 밤에도 낮과 같은 빛의 위계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쉽진 않겠지만, 많은 지식과 경험이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억중 : 계획단계에서는 그런 부분을 어떻게 작업하시죠? 모델작업을 통해서 확인하시나요?
김영섭 : 예. 주로 모델을 통해서죠. 모델을 주로 1/400에서 시작하여 1/200, 1/100, 1/50, 1/20 크기로 만드는데, 특히 성당 내부는 선 채로 들여다 볼 수 있게끔 크게 만듭니다. 직원들과 더불어 밑에 구멍을 뚫어서 본다든지, 한쪽면을 개방해서 본다든지 해서 그 광원에 가깝게 놓고 그것에 대한 스터디를 하지요. 물론 모델 재료가 갖고 있는 투과성도 있으니까 그 점도 미리 염두에 둡니다.
김정신 : 빛의 연출 때문에 필요 이상의 공간이 덧붙여져 환기의 문제나 동선의 문제 등 또 다른 상실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초당 성당>의 평면에서 좀 느껴지거든요. <초당 성당>의 경우는 전례공간을 에워싼 하나의 통로 플로어가 있는데, 벽 부분은 거의 막혀 있거든요. 그랬을 때 환기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전례공간으로 들어가는 어떤 과정에 있어서 막힌 벽의 빛의 연출은 상당히 뛰어나겠지만, 환기의 문제, 냉난방의 문제에 있어서는 마이너스 요소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님같은 경우는 성당측에서 제시하는 어떤 스페이스 프로그램에도 어느 정도는 관여해서 조절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능력도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언변도 충분하시니까. 그런 점에서 <안양 중앙성당>은 3천 5백 석이니까 어쩔 수 없다든지, 또는 이런 것과 연관지어서 애로점도 있지만, 프로그램에 문제가 생겼을 때 건축주인 성당에만 책임전가를 하는 부분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오해의 소지도 없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볼 때는 계단, 선큰되는 부분, 기타 골조량이 과도하게 많거든요. 면적에 비해서요. 그런 지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섭 : 저는 빛과 공기는 같은 개념으로 보거든요. <초당 성당>같은 경우는 평면에는 안나타나 있지만, 단면으로 보면 통로의 벽들이 양쪽으로 디클라인(Decline)되어 있습니다. 내부벽은 바깥으로 벌어져 있고, 바깥벽은 안으로 쓰러져 있거든요. 실제로 보면 벽 과 벽 사이가 굉장히 복잡합니다. 디테일을 보면 그 사이로 빛이 슬릿트(Slit)되어서 들어오고, 더워진 공기는 조그맣게 옆으로 펀칭되어 있는 곳으로 새어 나가게 되어 있고, 순로(順路)의 공기도 지붕유리 사이로 해서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나갑니다. 성당 내부의 환경디자인 측면에서 제일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이 많이 모였을 때 시간당 절대 환기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환기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을 경우, 수난절 때 촛불예식 중에 몇 사람씩 쓰러지는 경우도 가끔 있기 때문에,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 중에 하나죠. 옛날 <명동 성당>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 사실은 완전히 막혀 있던 성당이었거든요. 스테인드 글라스를 비롯해서 모든 창이 고정창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붕을 개수 할 때 몇 개의 비둘기창을 내서 처음에는 강제 환기를 시키려고 팬을 달기로 했죠. 그런데 팬을 달기도 전에 이미 공기의 대류현상에 의해서 굉장한 양의 공기가 밖으로 순환이 되더라구요. 그런 경험을 살려 대체적으로 그와 유사한 유형의 에어 볼륨을 갖는 성당공간에서는 천장벽 부분을 어느 정도를 뚫어주면, 특히 상부층에 모여있는 뜨거운 열기들을 뽑아내주면 간단히 해결되더라구요. 왜 자동차 운전할 때 지붕 위에 해치를 조금만 열어주면 금방 시원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거든요. 물론 공기를 조절하는 것보다 빛을 조절하는 것이 훨씬 돈이 많이 듭니다. 그러나 저는 두고두고 주장하는 것이, 초기 투자가 좀 과다하게 들더라도 자연광(Natural Light)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으로는 낮에는 어떤 경우라도 불을 켜지 않고 미사경본이라든지 성경책을 읽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것이 기본 조도라고. 그러니까 최소한 미니멈으로 80에서 100룩스 정도는 자연광으로 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초당 성당>은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기후 변화가 매우 혹심한 지역이라 겨울엔 영하 24도까지 내려가고, 폭설이 엄청나게 내리는 관동지방 특유의 환경 속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라는 주제로 만든 작은성당은 교구장께서 직접 설계를 발주하고, 검토하신 것인데, 특히 중심성에 대한 축과 두레상에 대한 개념을 공통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 중앙 제단에 대한 과감한 시도를 하시려는 그 분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설계입니다. 따라서 저도 그런 것에 주안점을 두었죠. 그러니까 시메트릭하면서 한쪽 면에 제대가 있는 성당형태가 일반적인데 반하여 초당성당은 신자석이 중앙으로 돌출된 제단을 에워싸는 형식이되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아직 보수적인 경향이 많은 대다수의 교회 신자들이 원하지 않는 형태입니다. 신자 서로가 마주본다는 것은 시각적으로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초당성당의 경우는 주교님께서 먼저 혁신적인 제안을 하셨기 때문에 그런 평면이 가능했던 것이죠. 서로 양쪽을 보는 중앙에 제대가 어느 정도 길쭉하게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제대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한쪽에서 제단 이외의 다른 편을 볼 때 그 사람 너머의 벽을 보게 된단 말이죠. 그때 사람들의 시선에 창이 있다든지 하면 어떤 시각적인 혼란이 온다고 예상해서 저는 그 너머를 무창으로 만들면서도 벽이 빛으로 가득찬 성당을 어떻게 짓느냐, 하는 것이 풀어야 할 과제였습니다. 지금 골조가 다 되어서 안에서 바깥으로 뉘어져있는 벽면 느낌이 피스풀(Peaceful) 하더라구요. 생각보다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발안성당>에서 느껴지는 딱딱함과는 전혀 달리, 현재 콘크리트로만 되어 있는데도 굉장히 평온한 생각이 듭니다. 재료 자체도 반사된 음향이 중앙으로 모인다든지, 하는 것 때문에 매우 신경을 쓰고 있죠. 가령 인조석을 바르고 한 20분 내에 전부 정다듬을 해서 쓴다든지 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빛을 위해서 초기 투자가 과도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는 제 나름대로의 일종의 '디자인 폴리시(Policy)'라고 보는 거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당측에서 책정한 예산의 범위를 크게 뛰어넘지 않고서 해결하는 일입니다. 구조 계산의 예를 들면 벽과 보가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을 합쳐서 벽체로 만들어버린다든지 하는 구조와 마감을 통합하여 계획하는 부분 등에서 절약한 돈을 빛의 조절에 투자를 하는 거죠. 굳이 변명하자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김정신 : 성당에 딸린 사제관이나 수녀원 등 부속건물의 기능에 상대적으로 소홀한 점은 없는지요? <초당 성당>같은 경우도 부속건물들이 삼각형의 방이 생긴다든지 전체적인 형태선에 의해서 세부적인 공간이 지배를 너무 받다보니까 개개의 방에서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거든요. <초당 성당>에서도 보이고, <성환 성당>에서도 보이는데, 실제 사용자들의 불평이나 문제가 되는 것은 없나요?
김영섭 : <성환 성당>은 지금 지하 부분이 이미 사용되고 있고, 곧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대체로 내부의 에지(Edge)가 창고라든지 그런 용도로 쓰여져 있구요. 사람이 자는 방은 가능한 형태의 간섭을 받지 않도록 특히 신경을 많이 씁니다. 기능적인 면에서는 구석구석 잘 이용했다는 평가를 사람들한테 많이 듣는 편입니다. 왜냐 하면 저희 건축가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은 형태 때문에 기능을 희생시켰다는 얘기거든요. <발안 성당>같은 경우는 대지 전체를 크게 놓고 봤을 때 커다란 오메가플러스 큰 A자 형태 개념이었는데, 그런 그림과 축선을 설정해 놓았을 때는 그러한 원칙들은 가급적 끝까지 지키려고 하죠. 저는 평면을 전체적으로 한 편의 구성적 요소로 채워진 그림으로 보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평면이 조직적으로 짜임새가 있어야 지어지는 것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김억중 : 최종적으로 성당공간의 질을 결정짓는 것은 적정재료, 텍스츄어, 색깔, 그리고 마감단계에서의 마무리작업 등입니다. 소장님께서 지금 설계하고 계신 성당에서는 성물예술, 미술,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들 중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성당 자체가 오브제 성향이 강해야 될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적절히 배경으로 머물러야 할 부분도 있을 텐데요. 그런 부분에서 다른 예술가들과 어떤 형식으로 진행하시는지요?
김영섭 : 성당건축에서 건축가가 해야 될 부분과 하지 말아야 될 부분이 몇 가지 있다고 봅니다. 제가 분명히 할 수 없는 부분은 금속공예와 유리공예 그리고 조각 부분들, 물론 시간이 있으면 그것도 하고 싶지만,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스테인드 글라스나 14처 등 공예와 조각분야에 대한 것은 각 성당 분위기에 맞는 작가를 선정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작가를 권유해 드리고요. 제대라든지 의자라든지 가구디자인 등은 건축가쪽에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인테리어 개념보다는 전부 토탈디자인된 하나의 건물로 본다면. 물론 가격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로 왕왕이 취소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만... 그 때문에 잘 되다가 속이 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저는 <안양 중앙성당>같은 경우도 신자석 의자 문제 때문에 나중에 매우 심각한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주겠다는 우려를 합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스트럭쳐가 딱딱하기 때문에 의자가 부드럽게 디자인되기를 바랬고, 돌도 온화한 분위기가 되기를 바랬는데, 성당바닥의 트래버틴이 결국 IMF 때문에 국산화강석으로 바뀐 데다가 의자까지 어두운 티크색으로 됐을 때 처음 의도했던 바와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꼬박 3일 주임신부님을 좇아다녔어요. 재고를 해달라고요. 신부님은 이미 납품업체와 색상과 재료가 결정이 되어서 할 수 없는 데다가 왜 건축가가 그런 부분까지 손대야 하는지에 대해서 잘 납득이 안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게 처음 설계를 의뢰했을 때와 태도가 좀 바뀌신 거죠. 의자까지 다 디자인을 해달라고 하시다가 신부님이 옛날에 생각하셨던 고딕의 어두운 성당의 기도분위기, 침묵하는 성당에 대한 이미지가 다시 되살아나신 거예요. 그러니까 김정신 교수께서 지적하셨듯이 성당 스트럭쳐가 전체적으로 딱딱하고 어두워지니까 오히려 그러한 것이 맞겠다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전 그것을 반전시키려고 했던 것인데, 신부님께서는 생각을 달리하신겁니다. 앞으로도 성당을 설계할 때 성당에 맞는 가구라든지 디자인은 계속 할 것입니다. 다만 다른 성 미술가들과 협의를 해야 하는 것은 크기, 위치 및 모델 재료 선정에 대해서죠. 그런데 그것조차도 어려운 것이 미리 협의를 해놓고 발주할 때가 되면 신부님이나 성당측에서 저와 작가들이 무슨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엉뚱한 곳으로, 다른 곳으로 가버려요.
또 한가지, 성 미술은 결국 가격 때문에 결정이 납니다. 그것 때문에 제가 성 미술가들한테 엄청나게 빚을 많이 지고 있습니다. 구상조각의 경우 제가 주로 부탁하는 분이 중앙대 조각과에 계신 임송자 선생님인데, 거의 구도적인 자세로 해주십니다. 예를 들면 <성환 성당>이나 <삼성산 성당>같은 경우도 14처 14개, 십자 고상, 감실을 재료비 플러스 알파 정도만 받으시고 해주시니까 너무 미안하죠. 도저히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데도 그분은 헌신적인 자세로 해주세요. 교회 건축가는 각 성당에 맞는 구상, 반구상, 추상 등 유형별 조각에 대한 개념을 분명히 갖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태껏 저와 함께 일해 오신 분으로는 몇몇 교수님들 중 추상조각의 경우 서울대학교 최인수 선생님, 구상조각으로는 임송자 선생님이신데, 성모회수녀회의 최봉자 수녀님같은 경우 비용이 좀 드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측에 추천을 하면 잘 통과가 돼요. 아주 모순되는 점이 있더라구요. 어느 수녀님이 인테리어를 맡는다고 하면 제가 보기엔 말도 안되는 결과물이 나오는데도 그냥 되더라구요. 이것도 동료의식에 대한 배려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 뿐만 아니라 진행하다보면 교회건축에 너무 피하고 싶은 쓴 잔인 경우가 많습니다.
<청양 성당> 김용덕 신부님 같은 분은 정말 드문 경우죠. 하다못해 책상, 조명등에서부터 쓰레기통까지 제가 콜렉션하러 다니는데, 그럴 정도로 건축가를 적극적으로 믿고 맡겨주십니다. 아, 이럴 수도 있는가 할 정도로요. 물론 그 정도까지는 안되더라도 중요한 부분에 대한 것들은 교회측에서 계속 건축가를 믿고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결국은 건축가가 무한 서비스하는 것이거든요. 코디네이션하는 비용은 별도로 받는 것도 아닌데, 쉽게 말해서 제일 마지막에 요리사가 맛을 내는 단계에서 그것을 왜 거부해버리는지 제일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김억중 : 그런 의미에서 성당에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는 성예술작품이 있을 때는 건축관련 잡지에 많이 소개되어야 될 것 같아요.
김영섭 :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원 성당>에서부터 일관되게 일해 온 스테인드글라스 작가가 있습니다. 최영심 씨라고. 오스트리아에 계신 분인데, 그 분 작품 정도면 세계적인 수준이죠. <부천 심곡 부활성당>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작업도 하셨죠.
부활 성당을 처음에 공사를 시작 하신 <부천 심곡 부활성당> 오시몬 신부님이 공사 마무리 단계에서 불행하게도 갑자기 돌아가시고, 성당 내부를 임시로 페인트칠만 해논 상태에서 손을 더 이상 대지 못하게 돼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후에 부임하신 신부님은 (붉은 벽돌로 된) 뾰족성당이 좋은 성당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런 분이 <부천 심곡 부활성당>을 보고서는 완전히 건축가가 마음대로 장난쳤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심지어는 천창의 환기창이 자동창으로 두꺼비 눈처럼 열리게 되어 있는데도 스위치를 연결 안했는지 창을 닫아 놓고 있으니까 엄청나게 덥죠. 비용도 많이 들여서 한 건데. 그 12개의 창을 돌아가신 전임신부님이 시험하시면서 '촛불 연기가 위로 잘 올라가요.'하면서 참 기분좋아하셨어요. 대류 환기가 잘 된다고. 그런 걸 지금 사용을 않고 있습니다. 그런저런 것들이 참 안타깝죠. 시멘트로된 화류목같은 것으로 화단을 만들어 조경 분위기가 훼손되어 있고, 피로티부분을 보고 차고에다 왜 문을 안달았냐며 울긋불긋한 알미늄새시로 그것을 막아놓고 하는 것들을 보면...
김정신 교수님께서 지금 뭔가 바뀌는 시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현실은 더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오히려 해프닝이 더 많이 벌어지죠. 제일 우려하는 것은 이러한 몇 건의 현대 교회건축이 미완의 장으로 끝남으로써 생기는 또 하나의 현대건축에 대한 실망, 그런 실망감이 누적될까보아 참 저 자신이 두렵기도 하고 많이 울적한 상태에서 고민하기도 합니다. 소위 우리나라 교회건축에 새롭게 시도한 몇몇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거듭된 실망으로 절망적인 상태를 겪었던 적도 있기에 더욱 힘든 거죠.
아직은 성미술 부분보다는 환경과 기능문제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편입니다. 성당 제대를 근사하게 만드는 것보다 천창이 높을 때 환기문제가 일어나기 않게 전동창을 설치하며 또 전동 창부분의 방수를 철저히 한다던지, 혹은 천장 속으로 왔다갔다하는 캣츠워크(Cat's Walk)를 만드는 데에 집요하게 신경을 쓰죠. 그러한 몇 가지 제 나름대로의 장치를 사용합니다.
김정신 : 종교건축은 건축가라면 누구든지 하고 싶어 하는 '건축예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여 개 가까운 작품을 이미 완성하셨고, 앞으로도 많은 계획안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같은 건축하는 입장에서, 또 신앙이 같은 사람으로서 부럽기도 하고, 큰 축복을 받은 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동시에 이제는 어느 정도 익은 실험적인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히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고요. 그 간상을 많이 받은 작품 중에서 전례 전문가들로부터는 미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설계했다는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소개되는 작품들이 전부 특색이 있고,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들이기 때문에 완성되어서 사용되는 데 있어서도 김 소장님의 의도대로 잘 발휘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우리 한국 교회건축의 리더로서 역할을 잘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억중 : 소장님 작품 하나하나가 한국 가톨릭교회로 보아서는 굉장히 소중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건축주나 신자들, 시공회사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집단과의 어려운 마찰에도 불구하고 그런 부분들이 잘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껴마지 않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단지 <발안 성당>같은 경우, 정해진 뷰(View)가 있는 지점에서 바깥의 풍경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대해서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발안 성당>의 사이트 주변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에 대한 예측과 더불어 계속 변해서 남게 되는 풍경과 고정된 풍경들이 좀 확실하게 구별이 되면서 그런 부분들까지 정교하게 정리되면, 가까운 시일 안에 우리 건축가들이 지은 작품을 학생들이 건축의 교훈을 얻기 위해서 방문할 수 있도록 좋은 작품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영섭 : 하루종일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회건축은 매번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새로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처음에 몸에 배인 습관대로 기능을 분석하기도 하는데, 이제 중요한 것은 연속성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뒤의 3,4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 그러려면 그 성당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아이덴티티가 있는 아름다움, 이것이야말로 긴 생명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그것을 왜 만드느냐, 어떻게 만드느냐, 머나먼 미래를 지향하는 작품이 우선 이 시대에서부터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에 항상 저의 소망이 있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원 성당>의 경우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성모회의 거의 모든 수녀님들이 성당 건물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 건물을 잘 보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것을 헐고, 다시 짓자는 등 갖은 불만의 목소리에 제가 상처도 많이 받았는데, 그 건물처럼 세월이 지나갈수록 사용자들한테 기능 플러스 무엇을 주는, 그래서 그 건물을 굉장히 사랑하게 되고, 자랑스러워 하는 것으로 만들려면 역시 처음에 가졌던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임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기 위해 분명한 것은 교회 일을 적게 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즘 가급적 성당 프로젝트는 1년에 하나이상은 하지 않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놓고 있습니다. IMF이어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동해성당>같은 경우도 작년에 제의가 들어왔는데, 제가 올해 다른 일을 해내야 하기 때문에 내년에 연이 닿으면 해 드리겠습니다 라고 정중히 말씀드렸습니다. 1년에 많은 교회작품을 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소모 뿐만 아니라 제 자신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매일 새로워져야 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것만이 두 분 선생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더욱 잘 지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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